제      목: (역사-삼국사기)국립발레단- 창작 발레 대작 『왕자호동』
이      름: 이찬주
작성일자: 2017.08.09 - 02:18

삼국사기 대무신왕조에 기록-
우리춤의 현장과 주변 287~289
지금까지 한국의 여러 발레단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서양의 발레 작품들을 거의 무대 위에 올렸다. 대표적으로 『백조의 호수』, 『지젤』, 『돈키호테』, 『호두까기 인형』, 『라 바야데르』 등 다수 발레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그런데 창작 발레 작품에 와서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 가운데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레퍼토리로 들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강수진)이 2015년 10월 16~18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무대에 『왕자호동』을 올린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작품은 2009년 11월 18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초연으로 올랐고 이때 연출은 국수호, 안무는 문병남, 박세은이 낙랑 역으로 출연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프로그램 등에서 “국립발레단에서 1988년 초대 예술감독 고(故) 임성남의 『왕자호동』이 재탄생되었다”고들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인 1974년에 이미 송범이 국립무용단 안무자 시절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를 바탕으로 『왕자호동』을 만들었다. 이때 대본 전진호, 연출 이진순, 호동왕자 역은 국수호가 맡았다. 문병남 역시 『왕자호동』과 인연이 있다. 그는 1988년 임성남 안무 『왕자호동』에서 왕자호동 역을 맡았다.
2015년에 올린 이 작품은, 임성남의 안무에서 볼 수 있는 연극적 구성을 살린 문병남의 안무력 그리고 대본과 연출을 맡은 국수호가 시대적 고증을 위해 백방으로 수집한 고구려와 낙랑 관련 사료를 반영한 결과, 이전의 『왕자호동』보다 더 새롭고 더 스펙터클한 작품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송범과 임성남의 뒤를 이어 한국적인 창작 발레 대작을 이루어낸 셈이다.
신비한 북 자명고에 얽힌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사랑 이야기 안에는 전쟁·사랑·배신·죽음 등 인간사와 관계된 상황과 성정이 담겨 있어 이야기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창작 발레 『왕자호동』은 국가 브랜드화 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2년 남짓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초연했다. 무대디자이너 신선희, 작곡가 조석연 등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초연 이후 더 세심하게 수정 보완했으며 2010년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2011년에는 이탈리아 산 카를로 극장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산 카를로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무대에 올랐었다.
이번 공연에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김현옹·이은원, 김기완·박슬기, 정영재·김리회 세 팀이었다. 필자가 보았던 10월 18일에는 정영재·김리회가 출연했다. 웅장한 스케일로 고구려와 낙랑의 서사가 춤으로 표현되는 가운데 일사분란한 남성 군무진이 만드는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호동왕자로부터 자명고를 찢으라는 밀지를 받은 낙랑공주가 조국과 연인 사이의 고뇌를 펼쳐진 필지를 사용한 춤으로 깊이를 더했다. 필대장군(이영철)은 호동과 대립각을 세우며 힘 있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호동왕자과 낙랑공주의 침대 장면은 사랑이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주변까지 확대하는 움직임을 덧붙였으면 더 좋았을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작품 중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이었다.
주요 캐릭터 춤 중에서 흰사슴(김명규)의 순발력 있는 몸짓과 비조의 춤(배민순·김종열)이 인상적이었다.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무대 정면 중앙에 놓인 북을 찢는 낙랑공주의 비장한 심정이 손끝에까지 배어나는 듯했다. 마지막 장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펼쳐지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2인무는 그들 사랑의 비극미를 한층 더 절절히 보여주었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마임 장면이 중간중간 춤 동작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왕자호동』은 한국적 정서를 서양의 발레 동작으로 잘 녹여낸 작품으로서 또 한국을 대표하는 드라마틱 발레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