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식 -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시조신화의 구조적 의미를 살펴본 후 유동식은 고대 제의의 구조와 신앙을 분석한다. 분석의 기초로 삼는 자료는 3세기 진나라의 사가 진수가 펴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다. 전편에서 강조한 대로, 신화와 의례는 다 같이 원초적인 신적 사건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며, 제례는 신화적 조형의 반복적 행위로 이해된다.
1.
부여는 정월에 영고라는 천신 제사를, 고구려에서는 동맹, 예에서는 무천, 진한에서는 오월과 시월에 소도에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저자는 고대 한국인의 신앙형태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1) 제천의례와 광명신앙. 시조신화에서 본 바와 같이 고대인들의 종교적 기초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었으며 그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강림했다는 신앙에 있었다. 따라서 고대 한국인들의 제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강림한 이 하느님(천신)을 맞이하여 그에게 제사 지내는 제천의식이었다. 이러한 하느님을 고대인들은 단적으로 광명한 빛으로 상징화하였다. 환한 분, 해와 같은 분, 천광.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인 고구려의 시조를 동명, 신라의 시조를 혁거세 또는 불, 밝이라하고 한 것은 모두 이러한 광명한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연유한 명칭들이다. 이를 밝안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랄 알타이어계의 Burkhan문화와도 상통하는, 그야말로 광명한 천신문화의 소산이다.
2) 농경의례와 곡신신앙
이것은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관련이 있다. 옛 한국인들은 본래 수렵민들이었다. 큰 大와 활 弓의 두 글자를 합쳐서 만든 말이 夷라는 말인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을 보고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수렵유목민들은 뼈에서 생명이 재생한다는 관념에서 뼈를 소중히 여겼으며 죽은 이의 영이 승천한다는 사상과 몸이 해체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고 또한 중국으로부터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자 차츰 농경민으로 발전해갔다. 그래서 주몽신화에서는 주몽에게 영력을 준 이는 천신이 아니라 오곡의 씨앗을 준 지모신으로 나오는 것이다. 혁거세는 하늘의 빛을 타고 천자로 태어난 밝안 왕이었으나 알지거서간 곧 곡신적 존재였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제의는 주로 10월, 곧, 가을걷이가 다 끝나고 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3) 가무와 창조신앙
고대 제천 농경의례는 온 나라가 대회를 열고 연일 술에 취해 노래와 춤으로써 하느님과 농신을 즐겁게 하고 그 해의 추수를 감사하며 오는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전이었다. 다시 말하면 노래와 춤은 신령과 인간이 교제하는 종교적 기술이요 제의의 일부분이다. 음주와 가무는 사람들을 황홀경으로 들어가게 하며 거기에서 사람들은 입신교령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을 떠올린 것은, 하나님의 내재화(internalized God)이다. 한국인의 제의에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린다는 개념, 말하자면, 초월적인 하느님에게 제물을 드려서 하느님의 환심을 산다는 생각보다는 그 하느님을 나의 내면과 공동체 안으로 초청하여 하느님과 논다는 생각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아무 교묘하게 결합된 차원의 신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곧, 초월적인 하느님, 인격적인 하느님과 내재적인 하느님, 비인격적인 하느님이 한국인의 제의 안에서는 공존해왔던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하느님은 천상의 하느님일 뿐만 아니라 인간생활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역사적인 하느님, 곧, 어떤 관념화된 초월적 이데아적 실체가 아니라 현실의 하느님인 것이다. 샤머니즘이 때로 정령신앙과도 혼동이 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하느님 이해에 기초하여 모든 만물이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사유로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통합적 이해와 경험이야말로 종교개혁의 핵심이었으며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원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둘에 대한 분리적 사고와 경험이 바로 교권의 타락과 공덕주의, 그리고 영성주의로 가는 것이다.
2.
다소 반복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저자는 다시 고대신앙의 구조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고대신화의 구조를 삼분한 것, 고대제의신앙의 구조를 삼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1) 천신강림과 산신신앙 2) 지모-인간의 승화와 곡신신앙, 3) 천지융합과 창조신앙.
1)에서 저자가 특징적으로 짚고 넘어가는 것은 하느님이 직접 인간에게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라든가 빛을 보내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고야 말았는데, 이것이야말로 요한복음이요 영지주의적 사유가 아닌가. 김용옥은 영지주의를 서양의 샤머니즘이라고 정의하는데, 어찌되었건, 이들 사유의 공통된 특징이 보인다. 그리고 수차례 강조된 바와 같은 성육신 신앙은 한국인의 오래된 신앙이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하느님은 직접 인간에게 구현되지 않는다. 구약적 사유에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간에게 직접 나타난다는 신화적 표현이 나오지만 한국의 신화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매우 약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이 하느님이 나타나는 이상 그건 더 이상 하느님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은 인간에게 직접 나타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신신앙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특별히 산신이 대표적인 신위를 차지한다.
나는 샤머니즘을 공부하면서 다신신앙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신앙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이려면 하나님은 다신으로밖에는 표현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많은 신들 중의 으뜸이라고 말하는 신관, 곧, hinotheism과는 다른 것이다. <한국무교의 이해>라는 책을 쓴 가톨릭 학자 박일영은 한국 무교의 신관을 hinotheism으로 파악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만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한국인의 신관은 그게 아니다. 여러 개 중의 으뜸으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여러 신들은 그저 하느님의 외형적 표현, 역사적 구현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이 어디 딱히 있어서 존재해서 그 분이 둔갑하여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그저 하느님이다. 어떻게 보면, 플라톤식의 이데아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선험적으로 있는 것이다.
2) 곡식의 씨앗은 부정을 매개로 한 인간의 승화, 곧, 인간이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두운 땅 속에 감금되어 죽어 없어졌다가 다시 생산적인 새 생명으로 살아난다는 곡신신앙, 곧, 자기부정의 죽음과 승화의 기술을 한국인들은 음주와 노래와 춤을 통해서 터득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3) 신은 우주와 운명의 창조자요 주재자다. 따라서 인간은 신과의 융합에서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소원성취는 신인합일에서 가능해진다. 제의는 바로 이러한 소원성취를 위한 신인융합의 과정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창조라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이미 말한 바이다. 60쪽에는 고대인의 신앙의 구조에 대한 도표가 나오는데, 저자는 태극도를 가지고 설명한다. 나는 여기서 생명과 문화는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며 그렇게 보았을 때 샤머니즘은 분명 초세간적인 신앙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조를 목적하는 적극적인 현실참여적인 신앙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Shamanism is not an other-worldly persuit, but is oriented to the cultivation of good life and the reframing of life.).
3.
저자는 다시 한국무교의 원형에 대한 삼분법적 설명을 한다. 요것은 좀더 구조적이다. 1) 성속변증법, 2) 신인융합의 엑스타시, 3) 기복의 조절. 이것을 이냐시오 영성과 연결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1)은 너무나 명료하고, 2)는 이냐시오의 관상적 체험, 3)은 식별.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유동식-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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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08.10.17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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