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세태를 반영함인가?」라는 구절을 보았다. 「절라․유쾌․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N세대의 영화인 『엽기적인 그녀』가 과장되고, 유치하고, 억지 같은, 그리고 예상치도 못하게 튀어나오는 발랄함에 폭소를 터트리고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 누군가는 “묵직한 문제 의식이나 할리우드식의 물량공세적 화려함은 없지만 그냥 마음 편하게 앉아서 깔깔거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최근의 세태는 사려깊고 진지한 사람보다는 ‘밝고 쾌활한 사람'을 좋아하고, 요즘 젊은 여성에게는 재미가 없고 말수가 적은 남성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 못지 않게 기피의 대상이라고 한다.
또한 대학가에서 문학, 역사, 철학 등과 관련된 과목들은 입학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고, ‘한국고전문장의 이해', ‘동서양고전 문장의 이해', ‘동서양의 고전', ‘동서양사의 이해', ‘사회주의 정치와 경제'와 같은 종류의 강좌들은 수강신청한 학생수가 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즉 한마디로 딱딱하고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존경의 대상인 역사적 인물도가 가볍게 희화화된 된 사례로 이순신 장군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인터넷 게임을 하며, 「유쾌․상쾌․통쾌」를 외치는 통신업체의 광고는 묵직한 의미의 전달보다는 가벼운 것을 환호하는 젊은 네티즌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박광택은 “바야흐로 소비의 중심이 신세대로 옮겨가면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고 취향에 맞춰 가는 것이 마케팅의 중요한 흐름이 되었다”고 했으며, “여기에 정치권 등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과 불신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순간적인 가벼움으로 도피해 보자는 심리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는 X세대이면서도 영화의 내용 속에서 순간적으로 가벼움의 도피처를 생각하게 되었다. 즉 여자 주인공인 전지현이 나무 밑에서 만났던 할아버지를 늙어버린 남자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하였고, 전지현을 그녀의 손녀 정도로 생각되게 하였다. 그것은 이미 전지현이 타임머신이라는 복선을 깔았었기 때문이었던 같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자 주인공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느꼈다.
그러나, 차태현이 벼락을 맞아 없어진 나무 대신에 그녀가 그 나무를 찾을 수 있도록 똑같은 소나무를 심어 놓았다는 이야기의 끝부분은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한국인이 선호하는 단순한 웃음만으로 끝나지 않고 ‘사랑을 위한 배려’ 외에도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이 영화는 N세대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고, 웃음 가운데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성이 엿보였다. 대중문화의 수많은 아이콘 중에서 변함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기호이다. 그 중 사랑에 대한 갈망과 기다림은 사뮤앨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기다림의 미학과도 같이 과거 우리의 영화에서 보여진 여성들의 기다림이 이제는 남성들의 기다림으로 바뀌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내용이 전혀 낮설지 않다는 것은 최근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변환인 여성이 남성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로맨스와 영화의 대중성이 맺은 관계를 가늠하게 하는 사회적 변화로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엽기녀 전지현이 차태현에게 하이힐과 운동화를 서로 바꿔 신기를 원하고, 그것도 하이힐을 들고 가겠다는 차태현에게 하이힐을 신고 가기를 원하면서 “너는 여자마음 몰라”라고 언급한 내용은 이 영화에서 ‘여자의 심중’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내용이었다. 바로 여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현재 원하는 것, 단순히 ‘그것 자체만을 바라는 여자의 심중’을 작가는 어떻게 알았을까?
눈물이 나도록 우습고 따뜻한 해학이 담겨져 있는 『엽기적인 그녀』!
주인공인 전지현은 예뻤고, 차태현의 연기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풀려버리는 그물코’처럼 다가오는 운명적 사랑은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지게 하는 우리세대의 멋진 영화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서 엽기라는 의미가 ‘이상성 있는, 독특한 행동’의 의미에서 ‘개성있고, 주관적이며, 독단적인 행동표출’로의 변화를 꾀하게 하였던 것 같다. 또한 이 영화는 불교의 윤회설과 맞물려 지면서 사랑이 우연보다는 필연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슴속에 담아가게 하였다.
인간에게는 근원적 경향(original tendency)이 잠재해 있다. 그러한 경향 때문에 누구라도,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엽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이성으로 순화시킨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서 인간에게는 이성에 대해 엽기적 행동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잠재해 있다는 메시지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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