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
이찬주춤자료관대표/춤평론가
유니버설발레단(UBC)이 2014년 무대에 올려 큰 호평을 받은 작품 <멀티플리시티>가 관객들의 요청으로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재공연 되었다.
<멀티플리시티>는 1999년 바흐 서거 250주기를 기념해 독일 바이마르시와 스페인 국립무용단과 공동제작했고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세계적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Nacho Duato)가 안무한 약 두 시간 길이의 모던발레 작품이다. 특히 올해는 바흐(J.S. Bach, 1685~1750)가 탄생한 지 330주년이 되는 해로서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룬 이 작품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1999년 스페인무용단에 의해 초연된 <멀티플리시티>는 안무가 나초 두아토(58)에게 2000년 춤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안무상’을 안겨주었다. 그는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예술감독을 맡으며 이 춤단체를 최고의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1부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는 바흐 삶의 다양한 모습을, 2부 ‘침묵과 공허함(空)의 형상(Forms of Silence and Emptiness)’은 바흐의 말년과 죽음을 표현했다. 시력을 잃은 후의 창작에 대한 두려움의 방황, 부인과의 사별 등 슬픈 기억 등을 담은 것이라고 나초 두아토는 2014년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작품에는 바흐가 작곡한 음악이 전편에 깔려 있다.
무대에 불이 켜지면 바로크시대 복장의 바흐(후왕 젠)가 관객에게 인사를 한 후, 막이 오르면서 그가 오케스트라(춤꾼)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칸타타 205번 <만족한 에올루스(Aelous)>는 악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춤꾼들의 몸에 의해서 연주된다. 즉 춤꾼들은 악기이자 음표가 되어 무대에서 좌우로 움직이거나 위로 튕겨 오르고 회전한다. 큰 규모의 군무진에 의한 집단연주가 몸으로 웅장하게 펼쳐진다.
또 바흐의 활의 움직임에 따라 첼로가 된 여성 춤꾼(김나은)는 온몸으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의 선율을 표현한다. 1971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 백남준의 몸을 이용해 바흐의 곡을 연주했던 공연이 떠오른다. 그리고 패티코트를 입은 남성 2인무, 바로크시대 그림을 그린 드레스를 입고 추는 여성 6인무, 많은 자녀들을 낳고 왁자지껄 살았다는 바흐의 가족등 다양하고 재미난 춤들이 이어진다. 특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미뉴에트 G장조> 춤곡은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노트’에 수록된 곡으로(안나 막달레나는 두 번째 아내다), 바흐는 이 음악에 맞춰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춤을 선사한다.
경쾌한 1부와 달리 2부는 무겁다. 오선지를 연상시키는 철장의 난간세트가 등장하며 춤꾼들은 음표가 된다. <토카타와 푸가 D단조>가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말년에 이른 바흐는 음악에 대한 고민과 시력까지 잃는 좌절 속에 서 있다. 죽음(홍향기)을 향해 다가가기도 하고 망설이기도 하고 손을 내뻗어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의 쓰러진 감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만 그의 감성은 점차 무너지고 그는 결국 죽음에 이끌려 미완성의 음악을 남겨둔 채 쓸쓸히 사라진다.
<멀티플리시티>는 모던발레에 속하면서도 패티코트를 입고서 추는 춤, 검정 타이즈를 입은 춤꾼들의 움직임에서 클래식 발레의 기본 동작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달려가는 동작, 뛰어오르는 동작, 걷는 모습 등 일상의 동작이 나초 두아토만의 스타일과 잘 섞여 환상의 춤을 빚어내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절정은 클래식 음악과 모던발레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바흐에 대한 헌정을 드러낸 남녀 파드뒤의 호흡이었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멀티플리시티>는 작품의 완성도만큼 우리에게 예술적 영감을 두 배로 돋워주며 하프시코드와 어우러진 바흐의 음악과 춤의 대화는 감상의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좋은 음악이 없으면 어떤 안무도 불가능하다”는 나초 두아토의 말처럼 위대한 바흐의 음악은 아름다운 한 편의 모던발레를 선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C0hHat_ik
https://www.youtube.com/watch?v=Td6b2yUFUSU
첼로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P6_Ux9_QI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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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15.07.19 - 0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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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이찬주 <육혜수의 흰꽃신>
쿠스타프 클림프-부채를 든 여인(1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