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의 풍자극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
2015년 10월 27일과 28일에 걸쳐 최상철 현대무용단이 최상철 안무 신작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 무대에 올렸다. 한 처녀가 신에게 희생으로 바쳐지는 구성을 담은 『봄의 제전』은 1913년 니진스키 안무로 초연된 이후 춤계의 에베레스트산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안무가들이 도전해온 작품이다. 모리스 베자르(1959), 피나 바우쉬(1975), 앙줄랭 프렐조카주(1994) 등이 『봄의 제전』 무대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수호(1991), 안성수(1997), 김남진(2014)에 의해 다양한 안무 색깔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작품으로 빚어졌다.
최상철의 『봄의 제전』은 독특하게도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동물농장』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이다. 대본은 연극 연출가 임형택이 맡았다. 춤꾼들은 동물 역할을 연기할 때 얼굴에 탈을 쓰고 나온다.
무대는 삼면의 숲을 이루고 있고 무대 후면 위 높다란 곳에 돼지 탈을 쓴 춤꾼이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다. 무대 오른편에 보라색 의상과 탈을 쓰고 등장한 까마귀(이미형)가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 네 발은 네 발일 뿐 두 발로 설 수 없는 숙명(……).”
이어 컬러풀한 재킷을 입은 춤꾼들이 타악기 소리에 맞춰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먼저 핑크(이지민)와 연두색(김정훈) 옷은 오른발을 연신 바닥에 비벼댄다. 이윽고 빨강(배가영), 남색(장두익), 초록(최석현)이 합류하자 다 함께 상체를 구부리고 발을 구르면서 옆으로 한 발씩을 내밀기도 한다. 한 명이 빨강옷의 여성을 밀쳐내자 다시 일어나 얼른 서둘러 합류한다. 다른 한 명이 초록을 밀쳐내자 초록이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이와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한 집단의 기득권과 그 집단의 높은 장벽을 표현하는 것 같다.
잠시 뒤 화려한 오색 깃털을 꼬리에 달고 등장한 닭은 객석을 등진 채 앉아 알을 깐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무대 위에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알에 시선이 모아진다. 닭은 알을 도로 가슴에 안고 몸을 휙 돌리더니 퇴장한다. 그 순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음악이 흘러나오고 돼지, 개, 새, 말 등 온갖 동물들이 무대 위로 모여든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나온 돼지가 동물들을 선동해서 혁명에 성공한다. 까마귀의 내레이션이 다시 흐른다. “돼지가 네 발은 좋고 두 발을 나쁘다. 인간은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은 빼앗고 생산하고 그들은 우리에게 폭력만 휘두릅니다. 영원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내레이션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7계명에 기반한 것이다.
동물들은 횡렬 구조를 이루며 걷는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누구든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무엇이든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것은 친구”라면서 다시 모여든다. 그러나 평등한 사회는 오지 않고 동물들 사이에서도 권력 암투에서 싸우는 사회가 지속된다. “서로를 넘어뜨리고 어디서 본 듯한 모습 어딘가 많이 본 광경 인간들의 짓이었나요.”라고 까마귀는 소리친다.
진주목걸이를 건 돼지가 밍크 치마를 걸치고 등장해 교태롭게 움직이며 인간이 된 듯한 모습으로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몇 바퀴를 두르며 움직인다. 사람과 돼지가 펜싱을 한다. 돼지가 찔려 죽는다. 돼지 탈이 벗겨져 인간의 벗은 상체 위에 끼워져서 오르며 막이 내린다.
인간 사회의 지배권을 쟁취한 동물 사회는 이상 사회 실현은커녕 달라진 모습 없이 다시 계층이 생기고 인간 사회와 똑같이 억압과 착취가 만연해진다. 지배층과 피지배의 관계는 인간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동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존재한다. 그런 모습은 결국 인간의 모습을 동물화한 것이다. 실제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독재를 소재로 다룬 정치우화다.
다른 안무가들이 만든 『봄의 제전』은 원작에 따라 신에게 바쳐진 처녀의 희생을 표현한 것과 달리 최상철 안무가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전면에 내세워 『봄의 제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커다란 풍선을 안고 등장한 닭은 팔에 묶였던 끈을 풀어 풍선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떠오른 알과 두둥실 춤추는 형상을 그려낸다. 모리스 베자르나 피나 바우쉬의 안무에서 간택된 희생자인 여성이 두려워하며 추는 솔로는 최상철 안무에 와서 알을 빼앗겼던 닭이 인간과 돼지에게 보내는 조롱의 춤으로 바뀌었다. 동물 탈과 의상으로 인물들의 역할 몰입을 이끌어냈으며 그것은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내레이션이라는 연극적 요소를 잘 살려냈다. 최상철의 『봄의 제전』은 단순하면서도 경쾌하고 비트 있는 움직임으로 최상철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동물농장』도 아니고 『봄의 제전』도 아닌 최상철만의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미디어와 춤을 결합시킨 안무가 대열에서 대표주자 격인 그는 뉴욕 데뷔작 『구름과 바위 Cloud and Rock』(1991, 솔로)를 발표한 이래로, 『심심한 여자』(1992), 『날아라 호빵맨』(1998), 『까망천사』(2000), 『빨간 백조』(2002), 『커넥티드, Connected』(2006), 『논쟁』(2010), 『오나 Is she coming?』(2012), 『오나 II, Her Immortal』(2013) 등을 다수 작품을 발표했으며 『까망천사』로 제5회 한국춤평론가회 춤비평가상을, 『논쟁』으로 제18회 무용예술상 안무상을 수상했다. 그는 위트를 포함한 풍자 영역에서도 대표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p301~305
< 우리춤의 현장과 주변> 현대미학사 2016 이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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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16.12.02 - 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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