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리비에 뒤부아의 인간이 표출하는 원초적 움직임 『비극』
이 찬 주
『우리춤의 현장과 주변』 2016 현대미학사p243~246
40대의 프랑스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Dubois)의 작품 『비극(Tragédie)』이 2015년 4월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성남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공연이며 아시아 초연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공연은 춤꾼들이 전라(全裸)로 출연한다는 것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 때문에 공연은 당연히 ‘19금’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중저음의 북 소리에 맞춰 열여덟 명의 춤꾼들이 대열을 이루어 무대 후면에서 걸어 나온다. 벽돌로 쌓은 세로 기둥이 후면에 3개, 양쪽 끝 무대에 각 1개씩 간격을 두고 세워놓았다. 그 기둥 사이사이에서 등장하는 춤꾼들은 워킹 하는 모델처럼 무표정하다. 앞사람과 한두 발자국의 간격을 두고 열두 걸음을 걸었다가 멈추고 다시 열두 걸음을 걷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조명은 환했고 그들의 몸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처진 젖가슴, 처진 엉덩이, 근육질의 가슴, 처진 남자의 성기, 마른 몸, 퉁퉁한 몸이 고스란히 보인다. ‘아마 계속 걸을 거야’,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난 계속 걸을 거야’라고 하는 듯 퍼레이드는 20분간 지속되었다. 벗은 몸이 눈에 익을 때쯤 춤꾼들은 빠르게 걷기 시작하다간 뛰기 시작한다. 사지를 내뻗거나 온몸으로 바닥에서 구르는 등 몸을 최대한 움직인다. 격렬하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깜박이는 플래시 조명 아래에서 춤꾼들은 거침없고 당당했다. 그런 거침없음과 당당함에 관객인 필자도 점점 동화되어갔다.
이들의 충동은 비틀거림으로 음울했고 발작은 암담하고 불안한 형상으로 그려졌다. 인간의 고유한 고통에 드러나는 욕망의 분출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인간의 군상들로 무리를 지어 만들었다 흩어지는 모습으로 드러낸다.
이후 춤꾼들은 남녀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성행위를 묘사한 것이라도 거부감은 없다. 남녀 춤꾼이 서로 떨어져서 행위의 감각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욕구, 자연 자체에서 솟아나는 환희를 표현해낸 것이다. 전자음악이 무대를 뒤흔드는 흐름 속에서 표출되는 원초적인 움직임이다. 어느 순간 그들의 벗은 몸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남성 아홉 명과 여성 아홉 명 등 22세에서 51세까지의 춤꾼들 열여덟 명은 각기 다른 피부색, 머리카락, 키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닌 인간상을 드러냈다. 무대 위에서 90여 분 걷고 뛰고 뒹굴고 한 덩어리가 된 끝에 남는 것은 거칠게 호흡하며 온통 땀범벅이 된 춤꾼들의 육체였다.
올리비에 뒤부아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작품 『비극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리스 비극의 ‘퍼레이드’, ‘에피소드’, ‘카타르시스’로 구성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한 뒤부아는 성남아트센터 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극』은 인류에 의해 인간성(humanity)이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 인간의 비극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인간성은 노력과 양심, 호기심, 그리고 지성을 통해 완성된다. 또한 나는 육체로부터 세상을 읽을 수 있고, 그로부터 세상의 수수께끼와 인간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 비극은 그 자신만의 질문과 사상, 딜레마, 전쟁과 평화, 어둠과 빛을 수반한다.”
실제로 상황은 비극적이지 않다. 이 작품의 의도가 “철학적이고 비물질적인 인간성을 본능적․육체적으로 가시화하는 데 있고, 신체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는데 그렇다면 안무가의 의도는 충분히 표현된 것 같다. 왜냐하면 공연이 끝나고도 잔상으로 남은 것은 뛰고 뒹굴고 땀으로 범벅된 육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퉁퉁한 여자 춤꾼이 퇴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관객들을 향해 보여주었던 알 수 없는 눈빛까지 생생했다.
이작품은 그가 『비극의 탄생』에서 차용한 인간의 삶에 대한 찬가이다. 고통과 그 반영에 인간을 내세워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자연의 통일성을 보여줬다. 뒤노르는 원초적 몸짓으로 황홀한 인간의 예술을 울려 퍼지게 했다. 전라(全裸)로 품어 내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는 숭고한 몸짓으로 고통스러운 세계에 대한 환영을 관조하게 하며 막을 내렸다.
2012년 『비극』은 아비뇽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래로 프랑스 리옹,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캐나다 몬트리올, 스위스 취리히 등 세계 40여 개 도시를 돌며 전 세계 춤계에 큰 화제를 낳았다.
이 작품으로 네 번째 한국을 찾은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는 현재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몽펠리에의 ‘발레 뒤 노르’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키 170센티미터, 몸무게 80킬로그램의 이 안무가는 춤꾼으로서 카린 사포르타, 앙줄랭 프렐조카주, 사샤 발츠 등의 유명한 안무가들의 작품에 출연한 바 있다.
-비극의 탄생(The birth of Tragedy)중에서- 인간은 노래와 춤을 통해 보다 높은 공동체에 소속돼 있음을 드러낸다. 걷고 말하는 법을 잊고, 춤추는 동안에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하다. 인간의 몸짓은 그가 매혹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춤의 현장과 주변』 2016 현대미학사p24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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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17.08.09 - 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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