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춤의 현장과 주변> 현대미학사 pp 194~198 저자 이찬주
2014년 국수호 춤인생 50년을 기념한 ‘국수호 춤 50주년 춤의 귀환’ 공연이 3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 동안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올랐다. 이 공연은 제목 그대로 한국무용가 국수호의 춤인생을 정리하는 의미 깊은 자리였다.
그 자신이 총예술감독으로 공연을 이끌었지만 또한 우리나라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연출 손진책(극단 미추 대표), 음악감독 박범훈(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미술감독 박동우, 조명감독 이상봉이 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연은 국수호와 그의 예술적 동반자들이 함께한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김매자, 배정혜, 정인삼, 김광숙 등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특별출연을 한다.
이번 공연에는 국악인들이 다수 참여했다. 김영재가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연주와 병창을 하였고 안숙선이 『사랑가』를 불렀으며 국수호와 함께 2인무를 추어 무대의 흥을 돋우기도 했다. 김영재는 무대 위에서 즉흥춤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수호 춤 50주년’이라는 표현만 보면 기존에 올렸던 작품들로 구성되었을 거라 짐작했는데 프로그램을 보고 신작이 세 편이나 있어 놀라웠다. 신작 세 편은 『고독』, 『용호상박』, 『금무』인데 그동안의 춤인생을 정리하는 자리에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세 편 중 『고독』과 『용호상박』이 첫날 공연에 올랐고 그중 『용호상박』은 나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용호상박’은 용과 호랑이가 싸운다는 뜻으로 두 강자의 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품 『용호상박』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중 적벽대전을 소재로 했으며 같은 소재를 다룬 판소리 『적벽가』를 음악으로 취했다. ‘군사설움타령’,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네 명의 소리꾼들이 무대 뒤쪽에서 현장에서 소리를 한다. 『적벽가』는 남성 영웅들을 다루는 것이라 공력을 들여 소리를 해야 제 맛이 나며 어렵고 진중한 소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적벽가』 잘 하는 명창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북소리에 맞추어 두 명의 춤꾼이 양쪽에서 등장한다. 60대의 국수호와 30대의 이정윤(국립무용단 수석)이다. 흰색 도포 자락을 펼친 채 마주 보고 기개를 보이듯 양팔을 펼치더니 천천히 서로의 힘을 겨루듯 서로 등을 보이며 세 바퀴 돌고 각자의 나왔던 진영으로 들어간다. 이어 무대 뒤 후면에 네 명의 창자(唱者)가 등장해 사설을 시작한다. “천하대세 분구필합이요, 합구필분이로다. 호랑이가 포효를 하면 용이 눈물을 뒤집고 용이 꿈틀거리면 호랑이가 으르렁대니 한나라 위한오 삼국 시절에 용 같은 영웅과 범 같은 호걸들이 천하를 다툰다. (……)” 무대 위에서 춤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네 명의 소리꾼들(이광복·김준수·김태영·강민수)은 앉고 서고를 반복하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춤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도포를 벗은 국수호와 이정윤은 네 명의 소리꾼들 뒤에서 나타나 가운데 길을 걸어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흰색 치마 의상이 고구려의 복식을 닮았다. 국수호는 밑단에 붉은색 선이 들어가고 이정윤은 파란색이다. 진양조의 “천여 척 전선(戰船) 모아 연환계를 굳이 무어 강상육지(江上陸地) 삼어두고 일등명장 유진(留陣)헐제 말 달려 창 쓰기며 활 쏘아 총 놓기 십팔기 사습(私習)허기 백만군중이 요란헐제 (……)” 하는 사설에 맞춰 두 춤꾼은 양손을 허리 위로 올려 천천히 여는 동작으로 느린 움직임의 조화를 이루며 2인무의 호흡을 보여줬다.
“공명이 나를 속였다! 이 융동(隆冬) 때에 동남풍이 있을쏘냐?” 노숙이 대답허되 “제 생각에는 아니 속일 듯하여이다. (……) 조금만 기다려보사이다.” 하는 ‘조자룡 활 쏘는 대목’에서는 연극적인 구성이 효과를 발휘하였다. “대장이 우뚝 나서더니 (……) 둘이 귀를 대고 무엇이라고 소근소근 고개를 까닥까닥 입을 쫑긋쫑긋 허더니 그 배를 급히 잡어타고 상류로 가더이다.” 하는 대목에서는 춤꾼들이 무대 위에 그림 그리듯 내용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접은 부채를 양쪽 귀에 번갈아 대더니 활짝 펼치고 고개를 양쪽으로 휙휙 돌려 쳐다보고 왼발을 살짝 밀어내듯 차는 모습은 경쾌하며 생동감 넘쳤다. 부채를 펼쳐 들고 휙 돌아서 내미는 얼굴, 살금살금 내딛는 걸음걸이, 왼발을 차듯이 살짝 들어 올리는 뒷발차기로 동작에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두 춤꾼은 만담을 하듯 요소요소에서 웃음 포인트를 짚어냈으며 소리꾼의 사설과도 어우러져 표현을 극대화했다.
“옳다. 그것이 공명일다.” 날린 배를 잡어타고 “이놈 사공아!” “예.” “이 배를 빨리 저어 공명 탄 배를 잡어야 망정 만일에 못 잡으면 이 내 장창들은 칼로 네 목을 땡그렁 비어 이물에 풍덩 드리치면 니 백골을 뉘 찾으리.”
국수호와 이정윤이 앞뒤로 배를 탄 모습을 연출하며 도망가는 대목도 배를 타고 달아나는 동작을 단순화했는데 관객들은 바로바로 이해하는 듯했다.
‘군사 설움 타령’에서는 군사들 개개인의 슬픈 사연을 주고받으며 바닥에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작을 보여줬다.
『용호상박』은 춤과 소리와 음악 등 가무악(歌舞樂)이 어우러진 한 편의 깔끔한 2인무였다. 남녀 듀엣이나 솔로가 주류를 이루는 춤 작품에서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남성 2인무는 흥미를 자극했다. 활개를 펼치듯 옷자락을 휘감는 몸짓, 서로 견주는 듯 등을 대고 회전하는 동작, 손으로 찌르는 동작, 기개를 보여주는 듯 어깨를 밖으로 돌리는 사위에서 강한 남성의 선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성큼성큼 발을 높이 들어 옮기는 큰 보폭, 양팔을 둥글게 마는 손짓으로 재미를 풀어놓고 줄거움을 선사했다.
이 작품은 젊은 남성 춤꾼과의 앙상블로도 화젯거리였다. 움직임의 완급을 조절하는 춤꾼 국수호는 젊고 건장한 체격의 30대 춤꾼 이정윤과의 대무(對舞)에서 노련한 맛을 보여주었다. 당기고 조이는 춤사위에서 젊은 춤꾼에 비견할 수 없는 멋을 담아냈다. 이정윤 또한 강한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한국 전통춤이 돋보이는 마루와 난간 그리고 무대 배경의 미닫이문의 문양 등은 기존의 무대와 차별성을 확연히 드러냈다. 이 춤은 극적 긴장감, 음악적 밀도, 춤의 구성 면에서 많은 관객을 놀라게 할 만큼 특별했다. 춤의 질감의 결을 장인 정신으로 닦고 또 닦아낸 노력과 애정이 새로운 한국의 춤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50여 년을 춤과 함께 살아온 국수호는 정형인, 박금슬, 김천흥, 한영숙, 은방초, 송범, 이매방 등 우리나라 최고의 춤꾼들로부터 춤을 익혔다. 그 자신은 춤만이 아니라 연극, 민속학 등 인접 분야 학문까지 두루 익힌, 춤계에서도 보기 드문 인물이다. 국내 최초 직업 남성 춤꾼으로서 국립무용단 입단 당시부터 주목을 받은 그는 이후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점차 안무 세계의 지평을 넓혀갔다.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88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개회식 총괄안무 등 굵직굵직한 무대 공연을 안무했는가 하면 교수로서 서울예대, 중앙대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그리고 1987년에 창단한 디딤무용단을 지금껏 이끌어오고 있다.
국수호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안무가이기도 하다. 『천마총의 비밀』(1998)을 시작으로, 『그 새벽의 땅』(1999), 『고구려』(2006) 등 고구려, 백제, 신라의 춤을 재현했으며 2009년에는 춤극 『가야』를 만들었다. 그가 5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모은 자료만 해도 트럭 열 대 분량이라고 하니 그의 노력이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충분히 안주할 만한 나이에 그는 신작을 발표했다. 예순이 훌쩍 넘은 그는 여전히 현역인 것이다.
 https://youtu.be/E5XllqYRk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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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21.08.18 - 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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